APRON-MAN

가부장적인 부모님 세대의 삶에서 성공적이고 행복한 가정의 기준이란 남편은 직업적 성공을 통해 가정 경제를 부양하고, 아내는 남편과 자녀를 위해 가사 노동을 전담하며, 내조하고, 인내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곤 했다. 물론 이때에도 ‘가정적인 아버지’들은 요리, 빨래 설거지 등의 가사 노동을 행하곤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분 좋을 때 한번 해주는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 세대의 가정 아래서 우리 세대(좀 더 구체적으로는 아들)는 남편(아버지)에게 주어지는 아내(어머니)의 헌신을 덤으로 누려왔다. 자라면서 사회의 분위기와 매체 등을 접하며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한 가치가 아님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것에 익숙해진 몸은 그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이러한 이율배반은 그들이 부모님과의 동거를 끝내고 새로이 가정을 꾸리면서야 비로소 갈등으로 현실화되고, 또 해소되게 된다. 오늘날의 가정은 더 이상 가부장적인 덕목들을 요구하지 않으며, 가사 노동은 남편이 해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나누어야 하는 일’이 된다. 나 역시 위 세대에 속한 아들로서, 새로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중에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가사 노동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도, 이미 누리는 것에 익숙해진 몸은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가사노동과 여성성을 동일화 하고 남성성과 대립시켜 갈등을 빚게 한다. 나의 사진에서는 가사 노동과 관련한 사물들이 극단적인 모습으로 재배열되고, 무의식 속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종종 폭력적인 모습으로 대립한다. 이는 가사노동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이며, 오늘날의 남편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성인식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Apron-man: 사전적 의미는 <에이프런을 두른 사람>, <노동자>, <기술자> 이며, 이 작업에서는 사전적인 의미와 가사 노동을 하는 남성의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